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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는 백제무왕이 창건한 호국사찰로, 2009년 미륵사지 서석탑을 해체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서석탑 출토 사리장엄구에는 사리를 담았던 사리내호, 사리외호, 금제사리봉영기, 청동합 등 다양한 물품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금제사리내호의 금동제사리외호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당초무늬, 물고기알무늬 등은 완숙한 백제 금속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용 출처 :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

 

백제의 문화를 알기위해서는 익산 여행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때 소풍으로 자주 가던 곳이 미륵사지였습니다.  항상 미륵사지로만 소풍을 가야하는 현실이 너무 싫었었습니다.  집떠나오니 이 곳도 그리워지더군요.

 

미륵사지 석탑 복원하기 위한 해체작업을 하는 것 까지만 직접 가서 본게 전부인데, 최근 몇년전 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도 될 정도로 백제유물로서의 가치를 입증 받았습니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로 가본 적이 없어서 사리장엄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백제의 후손인데 이제서야 가보다니 아쉽습니다.

 

버스 정류장의 한 벽면도 사리장엄으로 장식이 될 만큼 아름답고 빛난 모습이었습니다.  직접 가서 볼 수 있다니 발걸음을 재촉해봅니다.

 

 

▼ 과거 미륵사지의 전경을 만들어 놓은 모형물인데 규모가 상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제의 예술과 기술은 일본사람들이 와서 배워갈 정도라고 배웠잖아요. 이 시대 사람들의 기술은 위대한 유산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앞에는 큰 연못도 있는데, 뒷편에도 큰 산이 있는 것을 보면 배산임수를 명당으로 여겼던 선조들의 의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뒷편의 미륵산이 더욱 웅장하게 느껴집니다.

 

 

▼ 예전 중고등학교 국사책에, 미륵사지 석탑은 목조양식을 띄고있는 석탑이라고 배운적이 있는데, 돌을 나무만지듯 섬세한 기술이 가능했던 백제인들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은 비록 한쪽이 시멘트로 발라져있어, 이를 복원하기 위해 벌써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당시 복원도의 그림을 보면 참 섬세하게 조각이 된 듯 합니다.

 

지금도 익산-황등 일대를 둘러보면 화강암 채석하거나, 화강암으로 조각을 하는 공장들이 많은데, 공장이라고 하기엔 아까운 예술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백제시대의 기술이 아직까지도 후손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듯 합니다.

 

 

몇년전 석탑을 복원하기 위해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작업하던 걸 본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사리장엄이 발견이 되다니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해체된 석탑 또한 예전 그 모습으로 잘 복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간단하게 사진을 찍을 수도 있어서 교육자료로도 좋은 것 같습니다.   

아래는 사리장엄 수습과정이라고 합니다.  석탑 가장 아래쪽에 자리하고 그 세월동안 숨죽여 기다려온 듯 합니다.

약 1370년 동안 기다렸다가 출토가 된 역사적인 유물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기만 합니다.  1370년이라는 세월이 가늠이 안되다보니 더 그런 듯 합니다.

 

 

예전 문화재 중, 구슬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사리장엄구에도 구슬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고대에는 구슬이 귀한 보석의 종류로 여겨진 듯 합니다.

 

 

청동합은 모두 납작한 원통형 함 형식이지만, 구연부의 처리 및 문양은 조금다른 형식입니다.  함의 내부에 구슬과 향가루로 추정되는 유기물등이 봉안되어있어 이 또한 공양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합에서 출토된 금목 곡옥의 금모 표면에 작은 금 알갱이와 가는 금선은 삼국시대에 유행한 누금세공기법으로 제작었습니다.  금선 사이의 공간은 3가지 색의 안료를 감입하여 장식하였습니다.

사리공과 청동합에서 발견된 진주 구슬의 존재는 백제가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와 직접 교류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내용출처 : 사리장엄 안내문]

 

 

이게 바로 천년이상의 세월을 견뎌낸 사리장엄구입니다.  빛깔도 정말 곱고 지금보아도 세련된 문양입니다.

사리기는 사리를 모셔놓은 그릇을 말합니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기는 심주 사리공 정중앙에 안치하였고 금동제사리외호 안에 금제사리내호, 유리제사리병을 차례로 넣어 3중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사리기에 보이는 다양한 공예기법과 양식은 기존의 백제의 전통적인 금속 공예 기법을 계승하ㅏㅁ은 물론, 어지문 기법과 같은 새로운 기법을 받아들여 7세기 전반 백제 특유의 미술양식을 형성했음을 보여줍니다.

 

 

 

[금동제사리외호]

금동제사리외호는 뚜껑과 동체상부, 하부 등 세부분으로 나누어 주조하였고 동체의 하부 상단에는 ㄴ자 모양의 홈을 파고, 동체 상부의 하단에는 못을 박아 끼워맞춰 결합한 것입니다.  외호의 표면에는 연꽃덩굴무늬, 연꽃잎무늬, 둥근무늬 등 다양하고 화려한 문양이 있습니다.

 

[금제사리내호]

금제사리내호는 상하 2개체로 외호와 달리 두겅과 동체 상부가 일체형이며 금판을 두드려서 제작하였고, 표면은 외호와 비슷한 문양을 음각장식하였습니다.  내호 안에서는 유리제 사리병 파편, 사리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유리제사리병]

유리제사리병은 구연부와 뚜껑 외에는 형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얇은 파편으로 남아있습니다.  짙은 갈색을 띤 사리병은 구연부가 가장 두껍고 나머지는 0.11mm 정도입니다.

 

<출처 : 안내 설명문>

 

 

1370년만에 세상 구경을 한 사리장엄은 백제시대의 교역과 역사 그리고 예술의 혼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은 지금보아도 세련된 모습이고, 백제의 기술이 뛰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백제를 알고싶다면 당연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를 찾아보는 것이 으뜸인 것 같습니다.

직접 보면 더 신비롭고, 백제인의 예술정신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우리 땅에까지 건너와 백제의 문물을 배워갔나봅니다. 

 

다음에 시간이 더 있다면 공주를 비롯한 유네스코문화유산들을 둘러보고 싶습니다.  집 떠나기 전에는 이런 문물들이 소중한지 몰랐는데, 요즘 들어 더욱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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